2000년 국토연구원 강당에서 수도권 도시성장관리와 신도시 개발 이라는 주제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국토연구원은 판교, 화성시, 천안 3곳에 먼저 신도시를 건설할 것을 제안한다.
분당 일산 이후 중단되었던 신도시 건설ㅇ 미다시 수면위로 떠오른 순간이었다. 당시 건교부는 신도시 건설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하여 전문 연구기관의 정책건의라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신도시 건설을 끄집어낸 것이었다.
국토 연구원은 이밖에 파주 고양지역, 의정부, 김포, 화성 등 모두 7곳을 신도시 후보지로 지목하여 한꺼번에 개발할 경우 1990년대 1기 신도시의 부작용이 우려되는 만큼 우선 3곳을 먼저 개발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건교부는 아직 신도시 건설과 관련된 결정을 내린 적은 없지만 신도시 건설의 필요성이 활발히 제기되는 만큼 곧 당정 협의를 거쳐 건설계획을 발표할 것이라고 화답한다.
1990년대는 집값이 비교적 안정된 데다 수도권 5개 신도시 건설의 부작용이 워낙 컸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신도시 이야기를 꺼내기 힘든 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여 건교부 장관은 언론사 경제 사회부장과 가진 간담회에서 용인 수지 일대의 준농림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무분별하게 들어서는 데다 판교까지 개발되면 분당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지역의 교통난이 더욱 심화할 것으로 우려된다며 더 이상의 수도권 집중을 막기 위해 판교 일대에 대한 택지개발은 절대로 승인하지 않겠다고 쐐기를 박는다.
그러나 꾸준한 주택공급의 필요성과 소규모 택지의 난개발 부작용 때문에 계획적인 신도시 건설의 필요성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었다.
특히 판교 개발설이 흘러나온 것은 분당신도시 건설이 막바지였던 1994년부터다. 당시 토지 공사가 건교부에 이 일대를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할 것을 요청했지만 자체 개발을 주장하는 성남시의 요구에 밀려 일단 무산되었다. 1998년 4월 건교부가 성남시의 개발 계획을 받아들여 판교 일대를 개발예정용지로 지정하면서 판교개발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이후 건교부장과의 개발 불가 발언으로 잠시 주춤했던 판교개발은 2000년 판교개발에 적극적이던 토지 공사의 김윤기 사장이 신임 건교부 장관으로 옮겨오면서 본격화된다. 김 장관은 취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판교 신도시 개발을 전향적으로 검토하되 교통, 환경, 수도권 인구집중 문제 등을 감안해 개발 방안을 최종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힌다.
김 장관의 발언 이후 판교 일대의 땅값이 평당 200만원에서 250만원으로 들썩이자 3일 뒤인 22일 건교부는 김 장관의 개인 소신일 뿐 판교개발은 검토한 적이 없다며 한발 물러선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건교부는 국토연구원의 정책건의라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판교개발에 다시 불을 붙인 데 이어 한 달 뒤인 11월에는 당시 강길부 건교부 차관이 한국 주택학회 주최 토론회에서 난개발을 막기 위해서는 신도시 개발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며 굳히기에 들어간다.
이처럼 어렵게 개발 쪽으로 물꼬가 트이자 이번에는 경기도가 반대하고 나선다. 베드타운화와 수도권 남부 교통난이 이유였다. 여기에 환경단체까지 가세해 주민들도 찬반양론으로 갈리자 정부와 민주당은 2000년 12월 당정 협의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그해 말 만료 예정인 판교의 건축 제한 조치를 2001년 말까지 1년간 연장하는 것으로 어중간하게 봉합한다. 대신 경기 화성신도시는 본격적으로 개발키로 확정한다.
정부와 여당이 판교를 저밀도 전원도시로 개발한다는 원칙에 합의한 것은 2001년 5월이다.
그러나 당정 안은 곧 반대에 부딪힌다. 서울시는 서울 통근권 내에 신도시를 세우면 교통난이 가중된다는 이유로, 경기도는 자족도시가 되려면 벤처 단지의 구모를 더 확대해야 한다는 이유로 반대에 나선 것이다. 특히 판교의 번체자 단지를 10만편으로 정하려는 건교부 안에 대해 임창렬 경기지사는 벤처 단지를 최소 60만편으로 늘려 지식산업단지로 개발해야 한다며 반대한다.
벤처 단지 규모를 둘러싼 논란은 결국 같은 해 9월 29일 당 저희 위해서 벤처 단지 규모를 건교부 안 보다 10만평 늘린 20만평으로 하는 것으로 최종 마무리된다.
판교는 같은 해에 12월 택지 개발 예정 기구로 지정되면서 주택 1만 9700가구를 2005년 12월까지 분양한다는 계획이 세워진다. 그러나 2002년 들어 강남 재건축단지에서 시작된 집값 불안이 확산하자 판교신도시는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2003년 9월 당정 협의에서는 강남 집값 안정을 위해 판교신도시 주택 수를 종정 1만9000가구에서 1만가구 늘어난 2만9700가구로 늘리고 분양 시기도 2005년 상반기로 앞당긴다.
이처럼 판교개발의 초점이 당초 난개발 방지에서 과밀 억제, 집값 안정, 무주택자 주거 안정, 환경보호로 바뀌믕로써 정책 혼선을 자초한 측면이 적지 않다. 특히 김포, 파주신도시의 경우 2002년 9월 당초 강남 대체 신도시 건설방안으로 계획하였지만 1년 뒤인 2003년 막상 발표될 때는 자족형 신도시로 성격이 바뀌면서 서울 강남권 수요를 분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받았다. 물론 한 번 정해진 결정이라도 변화된 상황에 맞춰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하지만 제2의 강남을 표방했다가 번복하는 등 오락가락함으로써 결국 시장 불안을 제공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이다.
2005년 들어 집값 안정을 위해 추진된 판교가 거꾸로 집값을 올리는 판교발 집값 폭등 현상은 지금까지의 계획과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2005초 판교 중대형 아파트의 분양가가 평당 2000만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분당의 대형 아파트값이 2주 만에 1억원 오르고 용인 과천 등 주변 집값도 덩달아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