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에서 주택수요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돈이다.
부동산ㅇ ㅣ좋은 투자처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돈이 많이 풀려 통화량이 증가하면 어김없이 투기성 부동산 수요를 유발해왔다.
1970년대 중동특수와 1980년대 호황등 국내 유동성ㅇ ㅣ풍부해졌을 때는 어김없이 집값이 크게 상승했다. 한국의 투택토지정책(2004년)에서 '그동안 부동산 가격급상승은 해당 시기별로 특수한 과잉유동성에서 비롯된 자본순환의 위기에서 발생한 것' 이라며 부동산 가격 변공의 큰 특징으로 과잉유동성에 의한 외부에서 발생한 위기로 꼽았다.
주택시장 모형연구(1994년)에서는 '통화공급량 변동은 12개월 후 부터 주택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여 장기간 계속되며, 실질 통화량 1%증가는 주택공급을 4.3%증가시키는 반면 주택수요 총 증가효과는 9.9%에 달해 주택가격을 1.58%올려 놓는다.'라고 분석했다.
중동열기 속에서 부동산 값이 급등했던 1970년대 중동건설 붐을 타고 들어온 오일달러와 중화학공업 육성책으로 유발된 통화팽창은 물가를 치속게 했고, 시중에 넘치는 부동자금은 땅과 아파트로 몰려 부동산 시장을 달궈 놓았다.
1974년 1차 오일쇼크로 침체하던 한국경제는 1976년부터 세계경제 회복과 함께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1977년 수출이 100억달러를 돌파했다. 수출호조에 중동 진출 효과까지 겹쳐 당시 우리나라는 1230만 달러나 되는 경상수지 흑자를 냈다. 중동진출 인력은 1년 사이에 3배가 늘어 해외기능공만 4만여명에 달햇다. 1976년 경제성장률은 10.6%였다. 1977년에도 10%였다. 정부가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풀면서 통화량은 급속히 팽창했다. 도매물가 상승률이 11.6%에 달햇다.
유동성 증가와 인플레 압력은 부동산 시장을 자극하여 토지와 주택가격을 밀어 올렸다. 1977년 초부터 1978녀ㅑㄴ까지 아파트 투기열풍이 이어졌다. 여의도의 목화아파트는 당시 최고인 45대 1의 분양경쟁률을 기록햇다. 뒤이어 지은 화랑아파트 분양에서는 70대1이었다. 화랑아파트 당첨자는 하루아침에 15~250만원의 웃돈을 거머쥐었다.
건설부 표본조사에서는 이런 아파트의 절반 이상이 투기세력에게 분양된것으로 나타나싿. 한다리 건너면 20~30%의 프리미엄이 붙는 미등기 전매가 극성을 부렸다. 1978년 전국 땅값은 평균 50%, 대도시는 80% 서울은 140%나 상승하는 기록을 쏟아냈다. 당시 정부는 8.8초치 라는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통화금융을 다루기보다는 규제와 제도 개편에 초점을 맞추었을 뿐 중화학공업육성과 고성장이라는 달리는 말의 고삐를 멈추지는 못햇다.
1980년대 후반의 부동산 투기열풍도 저달러, 저유가, 저금리가 가져다준 흑자경제에서 비롯되었다. 1986년 47억달러로 시작한 경상수지 흑자는 이듬해 100억달러, 1988년 145억 달러에 이르렀다. 1986년 부터 1988년 까지 3년간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1%를 기록했다. 대선이 치러진 1987년 통화량 증가율은 전년대비 31%^에 달했다.
돈이 시중에 흘러넘치자 또다시 부동산 투기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1987년 토지가격 상승률이 전년도의 2배를 기록, 투기광풍의 전조를 보이더니 1988년에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했다. 1980~1987년 연평균 11%였던 지가 상승률은 1988년 전국 평균 27.5% 이듬해 32%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정부는 1988년 투기억제 지역의 확대, 양도세 중과, 투기꾼 및 부동산 업자에 대한 세무조사 강화 및 토지공개념도입을 골자로 하는 8.10부동산종합대책을 내놓았지만 통화량 축소와 물가안정을 위한 대책은 총 통화량 증가율을 18%선에서 억제한다는 것외에는 뚜렸한 내용이 없었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말 , 2001년 이후의 부동산과열에는 통화량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지만 정작 부동산 시장을 잡으려는 정책적 노력에서 유동성과 금리등 통화운용정책에 대한 고려는 적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2006년에 발간한 주택시장불안과 금리 보고서에서 '영국, 호주, 미국등은 주택가격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을 줄이기 위해 금리를 단계적으로 이상해 주택 가격 상승을 둔화시킨데 비해 한국의 주택경기 연착률 정책은 주로 수급조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보고서는 2005년 상반기 기존 국내 주택가격 버블의 크기는 17%이며, 이중 금리요인에 의한것이 11.6%로 총 버블의 3분의 2를 차지한다고 진단했다. 또 경기 상승기에 금리조절 속도가 늦어진 것이 부동산 시장과열의 큰 원인이라는 판단을 내놓아 금리논쟁에 불을 지폈다.
호주, 영국, 미국등은 점진적 금리인상으로 연착률에 성공한 반면 일본과 스웨덴은 부동산 버블 붕괴 의 후유증을 크게 겪은것으로 평가받는다. 스웨덴은 1985년 이후 부동산 대출이 급증하면서 상업용 부동산이 1911년까지 116%나 상승하자 1988년 중반이후 2년반동안 80여차례 기준금리를 변경하면서 7%포인트 인상한 결과 부동산 가격이 1992ㄴ연과 1993년 각각 9.2%, 11.2% 하락하며 부동산 관련 대출의 부실화와 금융 위기를 초래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부동산 담보대출 급증등 유동성 과잉의 조짐이 2005년 1분기에 나타났지만 경기부진이라는 딜레마 때문에 2005년 10월부터 금리인상에 나섰다. 속도도 조절해 2~4개월 주기로 0.25%포인트씩 5차례 인상하는 한편 금융기관의 대출규제라는 미시적 방법을 병행했다.
2005년 당시 미시적대응은 바로 투기지역에서 아파트 담보대출을 1건이라도 받은 사람의 추가대출을 제한하는 1단계 주택담보대출 리스크 관리 강화방안 이었다. 하지만 주택담보대출 관리방안 1단계에서는 시장의 충격을 감안 대출제한을 개인으로 정해 동일세대이더라도 배우자나 자녀 또는 그들의 명의로 투기지역에 여러 건의 추가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