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한국 아파트값은 원가나 수급과 관계없이 비정상적으로 치솟았다. 공급자 주도로 형성되는 가격체계를 무시한 분양가 자율화 때문이다. 정부는 아파트 분양가가 지속해서 상승하는 이면에 수요를 부풀리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떴다방’으로 불리는 중개업자들은 분양시장마다 몰려다니며 바람을 잡아 가공의 수요를 만들고 과도한 경쟁을 유발해도 방치했다.
이 바람에 분양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서울에선 평당 5000만원에 육박하는 분양가가 나와 당국과 실랑이를 벌어졌고 부산에선 엘시티더샵이 평당 2730만원이라는 비정상적 분양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건설사들이 경쟁적으로 분양가를 올렸지만 실제 원가는 분양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정부가 정한 분양아파트 기본형 건축비는 평당 483만원이지만 건설사들이 실제 계산하는 건축비는 이보다 훨씬 낮다. 정부가 건설사 반대에도 임대주택 표준건축비를 평당 320만6626원으로 고집하는 것도 그런 배경이 있다.
땅값이 비싸다지만 대지면적의 2배가 훨씬 넘는 면적의 아파트가 올라간다는 점에서 대도시라도 분양가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크지는 않다. 결국 건설사들이 대규모 광고를 하고 떴다방까지 동원해가며 가격을 올리는 근본 목적은 차익 극대화인 셈이다.
분양가 우여곡절의 역사는 1977년 시작되었다. 1977년은 중동 특수로 수축이 100억달러를 달성하고 경상수지가 1965년 이래 12년 만에 흑자를 기록한 해였다. 시중에 넘치는 부동자금은 부동산에 몰렸다. 평당 10만원을 호가하는 프리미엄을 노린 투기꾼이 몰려 125대 1일이라는 치열한 경쟁률을 보였고, 어떤 투기꾼은 거액인 2억원을 내서 서민용 아파트 100가구를 분양 신청해 사회적인 지탄을 받기도 했다.
민간아파트 분양가는 아파트 투기 붐에 편승해 급등함으로써 실수요자의 공분을 자아냈다. 아파트 분양가가 급등세를 보이기 전인 1977년 4월 이미 민간 아파트의 분양가는 공공부문의 아파트보다 비쌌다. 민간 아파트 분양가는 지방자치단체가 짓는 아파트보다 훨씬 높았다. 같은 해 9월 민간아파트 분양가는 5개월 전보다 무려 60% 상승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연히 아파트 분양가를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그렇게 건설사들이 밀어 올린 분양가가 이제는 경제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수준이 됐다. 소득수준과 동떨어진 분양가 때문에 이제 아파트는 ‘편안한 내 집’이 아니라 거품이 꺼져 터질 수밖에 없는 ‘폭탄’이 돼가고 있다. 그런데도 건설사 이익단체처럼 돼버린 정부는 여전히 분양가 자율화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내세워 건설사 이익 챙기기를 방조하고 있다.
이제 ‘폭탄 돌리기’에 동참할지 여부는 수요자 몫이 됐다. 수요자들이 청약 대열에 가세할수록 밀약하듯 분양가를 인상하는 건설사의 행태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높은 분양가로 아파트를 장만한 주민들은 그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가격담합에 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한때 서울 강남에서 유행했던 매매가 담합이 지방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는 게 우연한 것은 아니다.
과도하게 치솟는 분양가는 무주택자에게 부담을 주는 수준을 넘어 청년층의 희망까지 앗아가고 있다. 아예 내 집 마련의 꿈을 접은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정부가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무주택자들이 이익을 챙기고 청년들에게 희망을 돌려줄 방법은 청약 보이콧인 듯하다. 분양대금을 내느라 허덕일 것인지, 아니면 분양가 인하 운동에 나설 것인가. 청약 대기자들이 결정할 때가 됐다.
요즘 만나는 주택 건설업체 사장들은 한숨만 푹푹 내쉰다. 이야기가 좀 길어지면 정부의 주택 정책에 대한 질책과 비난이 끝이 없다. 시장의 변화를 읽어내고 사업을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경청하면 부동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법도 하다. 이들은 "시민단체나 정부가 업계 실상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시장원리를 무시하는 주장과 정책을 내놓은 것은 우리 사회에 아마추어리즘과 포퓰리즘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연간 1만가구 정도 아파트를 짓고 있는 중견 주택업체의 J 회장은 "사업을 해서 이익이 나면 세금을 내는데 개별 사업장의 원가를 공개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한다.
주택시장에 밝은 사람들은 아파트 분양가격이 오르는 것은 주택업체의 폭리라기보다는 땅값 상승과 주택사업 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토지 공사 등이 조성하는 택지지구뿐 아니라 일반 지역 땅값이 가파르게 오른 데다 시행업체가 땅을 확보하는 과정에서도 비용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주택업체가 공급받은 땅값(평당 기준)은 89년 분당 97만원, 2000년 용인 동백 340만원, 2003년 화성 동탄 360만원, 2005년 성남 판교 940만원 등으로 급격하게 올랐다.
특히 과거에는 주택업체가 스스로 택지를 매입해 아파트를 분양했지만 시행업체, 주택업체, 연 20%에 육박하는 고금리의 금융회사들이 끼어들어 자신의 몫을 챙기고 있다. 이러한 주택사업 구조는 아파트 분양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동안 주택시장에서는 주변의 아파트 가격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던 개발 프로젝트가 적지 않았다. 주상복합아파트 등으로 한 건만 터트리면 시행사는 수백억 원의 차익을 남기고 돈방석에 앉을 수 있었다. 그래서 주택업체에서 경험을 쌓은 유능한 인재들이 시행업체로 말을 갈아타면서 `새로운 대박 신화`를 꿈꾸고 있다.
주택시장의 많은 전문가는 아파트 건설의 가장 중요한 원자재인 토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고분양가의 사슬을 끊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공공기관이 사업을 하는 택지개발지구의 토지 보상 시스템, 택지공급 시스템의 보완을 통해 땅값을 최대한 낮추는 것이 `분양가 잡기`의 첫걸음이다.
주택업체의 손발을 꽁꽁 묶는 정책으로는 주택공급 차질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정부가 1ㆍ31대책을 내놓으면서 공공임대주택의 공급물량을 대폭 늘려 민간 부문의 공급 부족을 충당한다고 하지만 임대주택으로 다양한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