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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8학군의 부동산

올라석이! 2022. 6. 14. 13:36

학군배정 기준이 거주지 중심으로 바뀌자 강남지역에 8학군이 탄생하고 8학군 지역에 몰린 명문고를 쫓아 사람들이 이동하는 8학군병이 태동했다. 평준화 이후에도 학교간의 우열이 나타나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같은 해 과외금지 조치가 취해지면서 학교교육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해졌다. 교육열에 불타는 한국의 부모에게 명문고가 몰려있는 8학군이 커다란 유혹으로 작용한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고교평준화 이후 명문고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 주민등록을 허위로 옮기는 현상도 늘고있다. 서울 강남의 대치동, 삼성동, 서초동등 명문고들이 몰려있는 지역은 허위 세입자가 많아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 학생들이 학교 배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먼곳의 학교에 배정되느 ㄴ사례가 적지 않았다. 허위 전입이 많이 늘자 서울 대치동 한 아파트주민들은 며칠전 반상회에서 친척 친지들의 허위전입 부탁을 받지 말자 라는 색다른 건의를 하고 행정복지센터에 허위 전입자를 철저히 가려내줄것을 요청했다.

위장전입자 단속은 연례행사처럼 계속된다. 1982년 명문고 배정을 목적으로 한 위장전입관련자는 모두 처벌한다는 발표가 나자 8학군 명문고 주변 동사무소에 전출 신청자의 긴행렬이 늘어서기도 했다. 이처럼 교육열을 가진 중산층 부모가 몰리면서 경기고 서울고등 기존 명문고에 이어 힌흥 명문고가 하나둘셋 등장했다. 투기꾼도 명문고가 몰린 8학군에 몰리기 시작했다. 8학군 지역은 계획개발 덕택에 쾌적한 주거환경이 조성되어있었다. 이지역에 눈독을 들은 투기꾼은 1982년 중반이후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기 시작하자 본색을 드러낸다. 당시 정부는 1978년 이후 침체된 주택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힘겹게 노력하고 있었다. 8학군에 되살아난 주택경기가 더해지자 상승작용이 발생했다. 서울 개포도ㅓㅇ등 강남지역에 투기판이 벌어진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1982년 국회 건설위원회에서 민주한국당 이 당시 투기의 원인을 물었다.

개포동이나 압구정동에 수요자가 몰리는 것은 학군이 좋기때문이다 학군이 좋다는 것은 건설부와 관계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건설부는 엉뚱한곳에서 문제점을 찾고 있는 것이다. 투기 발생 원인을 살펴봤으나 학군 등 주변환경으로 인해 주택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 원인의 하나라고 분석되었다. 1983년 8월 서울시 교육감은 명문고가 밀집되어 있는 8학군등의 학군이 아파트 투기 붐과 전입학 적체현상을 빚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1985년부터는 이를 대폭 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하철3,4호선이 개통되면 통학거리오 ㅏ학군에 따른 아파트 투기 우려등을 고려하여 1985년부터 고교의 경우 2개학군정도를 추가해 8학군 학교의 분산을 꾀한다는 내용이었다. 서울시 교육위원회는 산하에 서울시내 인문계 고등학교 학군 조정위원회를 발족하여 조정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난후 이 방침은 보류된다. 신설 지하철의 통학 기여도가 5%미만으로 예상보다 낮게 나타났고 문교부 산하 교육개혁심의회에서 선지원 후선발등고입제도 자체를 바꿀 움직임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문교부는 1984년부터 학력저하등을 이유로 고교 평준화 정책을 재검토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울지역에 선지원 후시험제를 도입하자는 문교부의 논의는 무산되었다. 이에 연계해 학군 조정을 하기로 했던 서울시교육위원회도 더이상 학군문제를 건드리지 않았다. 1986년 서울시 교육위원회는 8학군등 특정학군에 학부모들이 몰리는 현상을 막기위해 일종의 대안을 내놓는다. 바로 전입학생의 거주기간원칙적용이었다. 이 제도가 실시되면서 1986년 8학군 졸업생중 거주기간이 1년 이내였던 600여명이 강북의 다른 학군 학교로 배정되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수 없었다. 강남 교육수요는 해마다 늘어났고 1990년대에 이르자 강제로 타 학군에 배정된 학생의 수는 3000여명에 달햇다. 40개월이 넘는 거주기간이 적용되었으나 강남 수요는 전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비평준화 시절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면 실력이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평준화 이후에는 돈이없어서 강남에 못갔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8학군은 많은 이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1987년 고등학교 배정통지서를 나눠주던날 서울 강남의 중학교 담임교사는 학생들을 달래야 했다. 흔히 강남의 고교에가야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타 학군에 진학하면 크게 낙심하는데 그 생각들이 잘못되었다느 ㄴ것을 시간이 지나면 알게될 것이다. 그러나 타 학군 배정통지서르 ㄹ받아든 한 학생은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당시 학생들이 8학군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짐작하게 하느 ㄴ장면이다. 8학군에 대한 수요는 점점 늘어 불씨만 댕기면 언제든지 주택가격 폭발로 이어질 기세였다. 8학군 서울 강남의 삼성동 역삼동 청담동등 명문고 배정 안정지대에서는 전세값이 집값과 비슷해졌다. 4년전부터 매물이없어 거래가 끊긴 상태라 전세값만 상승했기 대문이다. 당시 주택공급은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었다. 반면 3저 호황으로 소득이 늘어나 주택수요는 계속 늘어났다. 곧 집값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서울 강남 그 중에서도 8학군의 대형 아파트를 중심으로 급등세를 보였다. 1989년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51평형은 2억9천만원으로 보름사에 3천만원이 올랐다. 하룻밤사이에 넉달치 원급만큼 집값이 오른 셈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당신 평균임금은 한달 43만원 이었다. 집값이 오르자 내집 마련을 포기한 전세 수요자가 늘었다. 8학군 지역도 사정은 마찮가지 였다. 명문고를 찾아온 전세 수요자로 전세값은 미친듯이 폭등하였다. 1989년 서울 압구정동 현댕아파트 48평형은 1988년 8천만원 이었던 전세값이 1억원에도 물건을 구하기 힘든 상태가 되었고 대치동 쌍용 아파트 31평형은 같은 기간 천오백만원이 오른 6000만원에 전세계약이 이뤄 졌다. 이시기 주택사업협회가 서울 강남의 압구정동 아파트단지를 대상으로 조사한바에 따르면 조사대상자의 40%가 학군때문에 강남에 살고 있다고 대답했다.